대학생 친구들이라면 누구나 초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다녀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경주가 신라구나!’ 라는 단순한 생각만으로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간다는 생각에 들떠있던 그 시절. 경주는 수학여행 그 자체로의 의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재미있었던 곳이라는 희미한 추억만 남아 있는 곳이다. 해가 쨍쨍거리는 여름의 어느 날, 우리는 문득 다시 경주를 떠올리게 됐다. 수학여행 때의 추억이 그리워서인지 아님 천 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경주를 직접 마주하고 싶었는지 우리는 이유 모를 설렘을 가득 안고 1박2일 경주여행을 떠났다.
오후 1시경 우리는 경주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먼저 미리 예약해 둔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경주에는 여러 개의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게스트하우스는 외국인 뿐 아니라 배낭여행을 하는 내국인도 투숙할 수 있다. 다른 배낭여행자들과 여행경험 공유도 하고 외국인들과 친해질 기회도 많기 때문에 경주에 갈 땐 게스트하우스를 추천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고 우린 먼저 불국사, 석굴암을 보러 가기로 했다. 경주시내 근처에 있는 대릉원, 첨성대, 안압지, 경주향교를 제외한 다른 곳들은 오후6시에서 6시30분 사이에 관람 시간이 끝나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경주역 앞이나 경주 시내에서 10번, 11번 버스를 타면 불국사 앞에서 내릴 수 있다. 우리는 11번 버스를 타고 불국사를 향했다. 약 40분을 달려 불국사 입구에 도착해서 한 시간마다 있는 불국사-석굴암 간 셔틀버스를 타고 먼저 석굴암을 보러 다시 약 15분간을 위로 올라갔다. 석굴암을 향해 올라가는 구불구불한 산길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석굴암 입구에서 녹음이 우거지고 흙 냄새 나는 길을 따라 석굴사원에 도착했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석굴암은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창건한 것이다.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거친 화강암으로 인자하고 부드러운 미소의 부처님을 표현한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우리 마음속에도 따스함이 깃드는 것 같았다. 석굴암을 구경한 뒤에 석굴암 입구에서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불국사로 내려와 불국사 구경을 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본 불국사는 너무 큰 곳이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다시 보는 불국사는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불국사는 751년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한 사찰로 1973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불국사 안에는 너무나 유명한 다보탑, 석가탑을 비롯한 청운교 백운교, 연화교, 칠보교 등 신라 불교 미술의 뛰어나 조형미를 보여주는 조형물들이 가득 있다. 웅장하면서도 정갈한 사찰과 멋진 탑들의 모습에 우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불국사 하면 커다란 대웅전 앞에 마주보고 서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유명하다. 다보탑은 국보 제20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탑이다. 현재 남아있지 않은 목조건축 양식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석가탑이 전형적인 탑의 모습이라면 다보탑은 가장 개성적인 형태의 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볼 때에도 일반적인 탑의 모습에서 벗어난 개성이 돋보였다.
석가탑은 국보 제21호로 지정된 삼국시대 석탑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부처님의 교화를 상징하는 탑이라고 한다. 또한 탑 안에서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한 70여 점의 문화재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불국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여유롭게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 우리는 다시 11번 버스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오후7시가 넘어가서 예쁘게 노을 진 경주의 하늘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장관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전거를 빌린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야경 구경에 나섰다. 저녁이 되니 선선하니 바람이 불어 기분이 정말 좋았다. 우린 자전거를 타고 대릉원을 지나 경주역사유적지구로 향했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공원같이 산책로를 만들어 놓은 곳인데 그 안에 들어가면 첨성대와 계림, 석빙고 등을 볼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조그만 등을 켜놔서 분위기도 좋고 밤에 빛나는 첨성대의 모습도 너무 아름답다.
첨성대는 천문 관측 건축물로 구조와 구성은 물론 돌 하나에도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과학적이면서도 신비로움이 가득한 건물이다. 어두운 가운데 환한 빛을 내고 있어 신비로움이 더 가득해 보였다. 산책로를 따라 앞으로 쭉 가니 안압지가 나왔다. 안압지는 야경이 정말 아름답다고 하던데 그걸 증명하듯이 저녁9시가 다 되는 시간에도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안압지 안으로 들어가 연못근처로 다다른 우리는 감탄을 내뱉었다. 연못에 빛을 발하는 건물들이 반사되어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사진으로 차마 그 아름다움을 다 담아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안압지의 야경을 눈과 가슴에 한 가득 담았다.
안압지 구경을 마치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아까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올 때 얼굴에 닿는 시원한 경주바람과 풀 내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꼭 신라 시대로 되돌아가 신라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경주역사유적지구 바로 맞은편에는 대릉원이 있다. 늦은 시간이어서 대릉원 안에는 3~4명을 빼고는 우리밖에 없어서 조용히 명상하듯이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대릉원에는 미추왕릉, 황남대총, 천마총 등 23여 기의 능이 밀집해 있고 천마도로 유명한 천마총도 내부를 공개하고 있어 신라인의 무덤 형식과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가로등 불빛과 무덤 주위를 비추고 있는 불빛들만 빛나는 컴컴한 대릉원을 걸으며 거대한 무덤들을 보니 무섭기 보다는 신비로운 기분이 들었다. 특히 천마총 안에 들어가 여러 유물들과 천마도를 구경하니 더욱 기분이 들떴다. 대릉원은 9시 이후에는 입장료도 받지 않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그 시간에 가면 조용한 분위기에서 둘러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하지만 10시가 되면 대릉원은 물론이고 경주역사유적지구를 밝히던 불들도 전부 꺼지니 유의해야 한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서 우리는 옥상파티에 참여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투숙하는 외국인들과 국내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불국사를 시작으로 대릉원까지! 해가 떠있을 때도 아름답고 해가 져도 아름다운 신라 땅 경주에서의 첫째 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경주에서의 둘째 날. 게스트하우스 옥상파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서둘러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아침을 토스트와 계란으로 해결하고 지도와 물 그리고 자전거를 가지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왔다.
아침 10시에 처음으로 간 곳은 김유신장군묘였다.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 서천교를 건너고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차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차도로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었는데 뻥 뚫린 느낌에서인지 너무나도 시원하고 공기도 좋았다. 곧 김유신 장군묘의 표지판이 보였고 길목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 올라갔다.
김유신장군의 묘는 경주시내에서 볼 수 있는 능처럼 크고 거대했다. 그 당시의 왕릉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김유신장군이 신라시대에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를 생각 해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서천교로 와서 김유신장군묘와는 반대편에 위치한 무열왕릉으로 향했다. 찻길 옆에 위치한 자전거 전용도로는 우리를 더욱 신나게 했다. 쌩쌩 달리는 차들과 경쟁이라도 하듯 달리는 것 보다는 도로 옆 산과 논을 보면서 페달을 밟으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쨍쨍 찌는 날씨에도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기분은 정말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무열왕릉에 도착했다.
입구를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것은 무열왕릉비였다. 이 비석은 신라 무열왕의 위대한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문무왕이 세운 것이다. 목을 길게 쳐들고 힘차게 뒷발로 땅을 밀며 전진하는 거북과 여의주를 받들어 올린 여섯 마리의 용이 새겨진 돌이 거북의 등 위에 있어 걸작으로 불린다. 다른 비석과는 달리 거북의 모습과 용이 새겨져 있어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를 알고 나니 더욱더 멋져 보였다.
태종무열왕릉비를 지나쳐 무열왕릉이 보였다. 무열왕릉은 신라통일에 기반을 마련한 무열왕의 무덤으로 사적 제20호로 지정되어있으며 ‘태종무열대왕지비’라새겨진 이수의 발견으로 왕릉 가운데 매장된 왕이 명확한 유일한 능으로 알려져 있다. 그곳에는 무열왕릉 말고도 4개의 고분이 더 있었는데 안내판에 따르면 무덤의 주인은 알 수 없으나 무열왕과 가까운 왕이나 친척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다음에 경주를 방문했을 때는 누군가의 무덤인지 알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뒤로한 채 자전거의 페달을 다시 밟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경주 시내에 위치한 오릉을 찾아갔다. 벌써 시계는 1시를 가리키고 더위에 점점 지쳐갔다. 하지만 봐야 할 곳은 많고 시간은 부족했기 때문에 계속 멈춰있을 수 없었다. 다시 서천교로 돌아와 남쪽으로 한참을 가도 오릉이라는 표지판이 보이지 않아 이 길이 맞는지 헤매고 있을 때 반가운 표지판을 찾았다.
오릉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왕과 남해왕, 유리왕, 파사왕인 신라 초기 네 명의 박 씨 임금과 박혁거세왕의 왕후 알영왕비의 능을 일컫는다. 오릉의 안에는 사당 숭덕전과 알영 부인이 태어난 알영정터가 있었다. 오릉과 무열왕릉은 무덤이 5기가 있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오릉이 훨씬 넓고 평지이면서 가로로 무덤이 있는데 반해 무열왕릉은 오르막길에 5기의 무덤이 세로로 놓여있었다.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릉은 나무도 많고 산책로처럼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더위를 피해 놀러 온 가족도 군데군데 보였다. 또한 역사기행을 위해 오릉을 찾은 초등학생 무리도 볼 수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저랬을까? 하며 우리의 옛 모습을 추억했다.
오릉에서 포석정으로 가는 길은 가장 힘들었다. 시간도 가장 덥다는 2시였고 자전거도로가 좁아서 한눈을 팔았다가는 자칫 사고도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분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포석정. 우리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포석정에 대해 익히 이야기는 들어왔지만 저게 뭐지? 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했다. 우리가 본 것은 포석정지로 지금은 정자 등의 건물이 모두 없어지고 전복같이 생긴 석조 구조물만 남아있었다. 신라 왕실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인데 지금은 옛 모습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어서 너무 안타깝고 아쉬웠다. 그래도 이렇게 조금이나마 남아있어 우리 역사를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포석정까지의 일정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달리는 길에 우리는 교촌마을을 발견했다. 그 곳에서 향교와 최씨 고택을 구경할 수 있었다. 마을이 정말 한적한 곳에 있어서 언뜻 보면 그냥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처럼 보이는데 다행히 우리는 놓치지 않고 잘 구경할 수 있었다.
이로써 1박 2일간의 경주여행이 막을 내렸다. 우리는 처음 경주 스탬프 투어에서 추천하는 15군데를 다녀오고자 마음먹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코스여서 총 10군데를 체험할 수 있었다. 우리가 초등학생시절 왔던 경주와 지금의 경주는 많이 달랐다. 밖에서도 볼 수 있었던 첨성대의 모습이나, 유리로 둘러싸여 가까이 갈 수 없었던 석굴암은 왠지 낯설었다. 하지만 1박 2일간의 여행은 우리의 역사에 대해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틀림없다. ‘경주’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에서 우리는 역사를 다시 배웠다.
혹시 어린 시절 보았던 경주의 옛 추억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거나 새롭게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경주를 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떠나보자. 사진과 글로는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아름다운 신라! 경주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경주 스탬프 투어 -
스탬프는 경주의 대표적인 역사문화명소 15곳에 스탬프 투어 마크가 표시된 장소에 비치되어 있으며 문화관광해설사가 확인 후 스탬프를 찍어준다. 하지만 관람시간이 지나면 스탬프를 찍을 수 없는 곳이 많으므로 시간에 잘 맞춰야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우리는 총 8곳에서 스탬프를 찍었으며 군데군데 스탬프 찍는 재미가 쏠쏠했다. 만약 1박 2일 이상 경주에서 머문다면 이 투어를 추천한다
- 자전거 빌리기 -
내일로 기차여행을 하는 내일러들은 역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만약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한다면 그곳에서 빌릴 수도 있다. 하루-5,000원
이외 빌릴 곳) 역전 지점(역전자전거대여점 054-746-8268)
보문 1호점(훼미리자전거대여점 054-745-1303)
보문 2호점(육부촌자전거대여점 054-745-6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