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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을 품은 단청 浮石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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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2-05-17 조회수  1534

길고 느린 숨, 더딘 걸음으로 오르다 보면 짙은 녹음, 화려한 단풍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자연의 바탕이 환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호젓하고, 의젓하며, 너그러운 아름다움은 자연의 순리에서 비롯된 부석사만이 지닌 매력이다.
충과 효를 본보기로 삼고, 사랑과 우정을 지키며 살아온 우리 민족의 이야기는 곳곳에 숨어 있다. 천 년의 세월 동안 살아 숨 쉬고 있는 고찰 부석사도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곳곳에 유적과 자연들 속에 숨겨놓고 있었다. 신라시대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주며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건물로 암기된 부석사의 모습을 직접 보니, 간결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며, 더하고 뺄 것 하나 없는 완벽함 속에 사뿐히 고개를 들고 있는 지붕의 추녀 곡선과,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기둥과의 조화를 통해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돌아서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부석사의 자태는 아마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더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부석사 창건 설화는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역사를 모아서 지은 삼국유사에서 전해진다. 신라시대에 불교 공부를 위해 당나라를 향해 떠난 의상은 도중에 등주(登州, 옛 고려시대 행정구역)에 도착하여 그 곳 어느 신자의 집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그러는 동안 신자의 딸 선묘가 의상을 사모하게 되어 결혼을 청하였으나, 의상의 깊은 불심과 공부를 향한 여정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 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의상은 다시 선묘의 집을 찾아 그 동안 베풀어 준 호의에 감사를 표하고 바로 배에 올랐다. 의상을 만나지 못한 선묘는 부둣가로 달려가 의상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전하지 못한 법복을 상자에 넣어 바다에 던졌는데 그것은 온전히 의상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아직 불심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인가. 선묘는 곧장 그 자리에 서원을 세우 후, 몸을 바다에 던져 용이 되어 의상이 탄 배를 호위하여 그를 계속 보호하였다.
의상은 자신이 공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백성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땅을 찾다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이미 그 곳에 살고 있던 도둑의 무리들이 방해를 하였다. 그러나 용으로 변한 선묘가 갑자기 나타나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도둑들을 위협하여 모두 몰아내고 의상이 절을 창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여기서 부석(浮石)은 바로 선묘가 돌을 들어 올렸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고, 그 공중에 뜬 돌을 그대로 부석(浮石)이라 하여 이름으로 삼았다. 현재 이 절 무량수전 뒤에 부석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당시의 그 바위라고 전해지고, 부석사에는 머리를 법당 쪽으로 하고 죽은 용이 묻혀있다고 한다. 가슴 뭉클거리는 이 사랑 이야기가 나를 부석사로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무량수전 앞에 서 있는 국보 제 17호의 석등은 통일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이라고 한다. 정말로 빼어난 조각 솜씨가 엿보였으며,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서려 있다. 특히 화사석 4면에 새겨진 연꽃 봉우 리를 쥐고 선 각각 다른 모양의 보살상 조각의 정교함은 석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비바람을 견디며 무량수전을 지키고자 하였기 때문일까. 세월의 흔적으로 그 조각의 모습이 점점 지워져 가니 안타까울 뿐이다. 석등의 공간으로 무량수전을 보면 석등 앞 네모난 부분으로 무량수전의 현판이 딱 맞춰서 보인다.


'무량수전' 이라고 쓰인 이 현판은 고려 말 공민왕의 친필 현 판인데도 불구하고 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법 정 스님이 '무소유'란 책에서도 이야기 하셨지만, 살아가면서 이 무(無)자를 실천하고 생활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지금도 내 머리에 가득 차 있는 삶의 무게와 세속의 어지러움을 석등을 통해 본 글자들을 새기면서 부석사를 얻고, 부처의 법을 느끼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무량수전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조사당이 있다. 우리나라 국보 제 19호로 의상대사의 전영을 모신 곳이다. 조사당 앞에는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세우고 난 후, 도를 깨치고 인도로 떠나기 전에 사찰의 지붕 아래에 자신이 들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으면서 ‘지팡이에 뿌리가 내리고 잎이 날 터이니 이 나무가 죽지 않으면 나도 죽지 않은 것으로 알라.' 라고 이야기 하였다는 전설을 간직한 선비화가 있다. 의상대사가 떠난 후에 아무도 보살펴 주지 않았는데도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다고 한다.


아기를 못 낳는 부인이 선비화의 잎을 삶아 그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내려와 나뭇잎을 마구 따 가는 바람에 나무가 많이 훼손되어 지금은 보호철책 사이로만 간신히 볼 수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 선비화는 남북이 분단되었을 때부터 한동안 꽃이 피지 않다가 2002년 월드컵이 개최되었을 때에는 꽃이 활짝 피었다고 한다. 또한 절대로 위에 있는 사찰의 지붕을 뚫고 자라지 않는다고 하니, 의상의 불심이 깃들여진 신비한 꽃임에 분명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소백산 능선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의 땀을 식혀준다. 부석사를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용이 된 선묘가 나를 맞아주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이 전설만을 믿고 먼 길을 달려 부석사에 오게 된 것은 어떠한 보상을 바래서가 아닌, 꿈이다. 그 꿈에는 아직도 선묘에 애달픈 사랑이, 의상의 뿌리 깊은 불심이 존재함으로써 또 다시 현실로 달려가야 하는 나의 시간을 달래주고 있었다. 얻어가는 깨달음과 자연의 위대함과 사찰의 넉넉함을 잊지 말고 살아 갈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나와 같은 기억을 간직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일까. 곳곳에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돌탑들이 즐비하였다. 각각 다른 소원을 빌며 쌓았을 돌탑들 서로가 어울려 있지만, 그 모든 것을 품어주는 부처님의 자비처럼 저녁노을을 담은 부석사도 나를 안아주었다. 그 곳에 내 시름까지 얹어주고 돌아서기가 미안했지만, 되돌리는 발걸음에는 감사함을 가득 담았다.

소백산 기슭에 해가 지기 시작하자, 긴 가을밤을 맞이하는 인기척 없는 부석사 마당도 가을의 붉은 낙엽으로 가려진 것처럼 노을이 물들기 시작한다. 부석사 곳곳에 슬며시 스며들어 단청 끝에서 머물고 가는 그 시간은 아마도 한 정인을 잊지 못한 사랑이 담긴 여인의 붉은 마음이 아닐까. 그 마음을 아는 부석사는 그 노을의 끝을 놓지 못한 채 넉넉히 품어주고 있다. 잠시 그 노을에 일상생활에 지친 내 몸과 마음을 적셔보며, 잠시 선묘의 사랑을 해보며 이 길을 내려가고자 한다.


보고도 눈빛을 기억하지 말아야 하고,
듣고도 그대의 음성을 담지 말아야 하는
당신은 이미 부처님 세계에서 태어난 사람.
그런 당신에게 제 사랑은 한낱 춘몽이겠지요.
제 그리움이, 사모함이 하늘을 다 덮는다 해도 이루어질 수 없겠지요.
사랑하기에
이젠 스승님으로 모시며 당신을 섬기고자 합니다.
불심 미약한 여인의 불순한 마음이라 노여워하지 마세요.
지금 가는 길이 어쩌면 당신의 뜻을 따르는 열반의 길일지도 모르니까요.
울음을 삼키며 흐르는 물에 제 몸을 담습니다.
가슴 안에 있는 말 꺼내지 못 한 채 그렇게 당신을 따릅니다.
줄이 끊어진다고 가락이 멈추지 않듯이
제 사랑은 죽어서도 그대를 지킬 것입니다.



- 부석사 소개 -

우리나라 화엄종을 창시한 곳으로 의상이 676년 왕명을 받고 창건하였다. 신라시대의 최고의 석등으로 꼽히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국보 17호인 석등과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국보 18호인 무량수전 등 우리나라의 역사와 독특한 건축미를 보여주는 많은 유물들이 있다. 결코 작지 않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상주하고 계시는 스님들은 몇 명 안 계시지만, 아직도 본래의 나무 색 누각들이 은은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대신 이야기 해주고 있다. 또한 아직도 아침과 저녁시간의 예불시간은 우리나라 전통을 지키고 있고, 무량수전 앞 마당에서 볼 수 있는 첩첩의 태백산 줄기들의 웅장함에 저절로 탄성이 나오는 여행지이다. 교통편 및 숙박에 대한 기타 문의 내용은 http://www.pusoksa.org 참고하면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코리아브랜드넷 3기 콘텐츠 기자단

리포터 김나래 김효경
이메일 dsknr2000@naver.com
Wolle00@daum.net

최초등록일 2012.05.17, 최종수정일 201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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