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혹시 결혼식에서 이가 부러져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
“결혼식 당일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긴장했고 정신이 없었어요. 웨딩플래너의 지시에 따르기 바빴고 허둥지둥 댔죠. 결정적인 사건은 폐백을 하는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폐백을 할 때 대추를 그냥 깨무는 시늉만 하면 되는 것을 모르고, 최대한 세게 깨물어서 저의 앞니가 실제로 부러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죠. 끔찍하지 않으신가요?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한국의 결혼식 문화를 잘 모르고 시키는 대로만 하다 보니 일어난 사고였어요. "한국의 결혼식 문화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결혼식장에 들어갈 걸"하는 생각이 들었죠.”
(Christopher Jones, 27,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예정, 2010년 5월 아내 소영씨와 결혼하여 한국에서 거주 중)
|
#1 그들의 첫 만남: 전차남(電車男) 크리스
크리스씨의 인생은 한국인 아내 소영씨를 만나고 나서 180도 바뀌었다. 그들의 영화와도 같은 첫 만남은 호주 시드니의 기차 안에서 이루어졌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한창이던 6월, 소영씨는 호주 시드니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었고, 하루는 기차를 잘못 타서 기차 내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던 크리스씨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크리스씨는 그 당시 소영씨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첫 눈에 반했다는 표현밖에는 쓸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소영씨도 마찬가지였다.
“친절히 대답해주는 파란 눈에 파란 제복을 입은 크리스는 제게 너무 멋져 보였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에 대화를 오래 할 수 없었죠. 그런데 크리스가 갑자기 제게 오더니 수첩을 찢어 자기의 핸드폰번호를 적어 제게 주고 도망치듯이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전 너무 놀랐고 한편으로 기뻤어요.” (소영)
이 사건을 계기로 호주인 크리스씨와 한국인 소영씨는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2010년 결혼에 골인하여 현재 대한민국 서울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
#2 사랑엔 국경이 있다? 없다!
물론 크리스씨와 소영씨의 연애전선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평생 호주 밖을 나가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크리스씨에게 한국식 생활방식은 너무나 생소하게 느껴졌다. 소영씨 역시 해외 경험이 많지 않은 한국 토박이였기 때문에 크리스의 서구식 생활방식을 완전히 이해해 줄 수 없었다. 이 둘 사이에서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끔 문화의 차이로 인해 다투는 일이 일어났어요. 예를 들면 한국 사람들은 음식을 시켜도 서로 자연스럽게 나누어 먹기도 하잖아요? 호주에서는 전혀 그렇게 하질 않거든요. 이건 내 건데 왜 한국 사람들은 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됐었죠. 하지만 한국에 오래 거주하면서 이런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음식을 너의 것, 나의 것으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두 개를 주문하여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죠." (Christopher Jones)
또한 크리스씨는 소영씨 부모님께 교제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한국의 부모들이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걱정을 했기 때문이다. 소영씨 부모님께 크리스씨는 거의 1년 반 동안 소영씨의 외국인 친구 중 한 명으로 소개될 뿐이었다. 한국말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크리스씨는 한국의 너무나도 다른 생활방식, 사고방식, 음식, 날씨, 사람들의 시선 등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소영씨와의 다툼도 잦아졌고 서로 지쳐가기 시작했다. 결국 크리스씨는 7개월의 한국생활 끝에 호주로 돌아갔고, 거의 이별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화해를 했고, 크리스씨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그들의 교제사실을 당당하게 공개했다. 소영씨 부모님의 반응은 다행히도 '환영'이었다. 소영씨의 친구들도 처음에는 서양 사람들에 대한 편견으로 크리스씨와의 교제를 반대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7년간의 연애를 지켜보고 결국 이 커플을 축복해주게 되었다.
#3 한국의 결혼식 VS 호주의 결혼식
- 한국의 폐백문화
크리스씨가 한국결혼식의 마지막 단계인 폐백문화에 대해 미리 알 수만 있었더라면, 적어도 그의 이가 부러지는 헤프닝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폐백이란 한국의 전통혼례방식이 서구식 결혼식에 추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폐백은 한국 결혼식의 마지막 단계로, 신랑 측의 친지어른들께 신랑과 신부가 그 집안의 가족이 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폐백은 일반적으로 결혼식 후 폐백실에서 간소하게 치러진다. 폐백 음식에는 대표적으로 밤이나 대추가 사용되는데, 이러한 열매를 부부에게 던져주는 것에는 자손의 번영과 윤택한 생활을 누리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또한 집안의 가풍이나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닭이나 육포, 구절판, 대추고임, 한과 등이 폐백음식으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폐백의 과정을 살펴보자. 폐백은 신랑 측에서만 받는다. 먼저 신랑, 신부가 결혼식장에서 퇴장 한 이후, 별도로 마련된 폐백실에서 신랑의 조부모님, 부모님 등이 연로하신 순서대로 신랑, 신부의 절을 받는다. 부부가 어르신들께 술을 한 잔 올리고 나면,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거라." 혹은 "아들, 딸 낳고 잘 살거라." 와 같은 덕담을 하시면서 대추나 밤을 던져준다. 신랑, 신부가 이것을 먹으면서 덕담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크리스씨처럼 대추를 최대한 세게 깨물어 이가 부러질 필요는 전혀 없다. 대추나 밤을 살짝 깨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한국의 부조문화와 호주의 선물문화
호주인 크리스씨의 시각에서 한국의 결혼식은 여러모로 호주의 결혼식과 다른 점이 많았다. 한국의 결혼식이 일사천리 약 1시간 이내로 이루어지는 반면, 호주의 결혼식은 밤새 이어지는 파티에 가깝다고 크리스씨는 말했다.
"저는 무엇보다 한국 사람들이 결혼식이 끝난 후 약 한 시간 만에 뷔페에서 식사를 하고 나가는 것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호주에서는 결혼식이 끝나고 환영행사로 최소 몇 시간동안 얘기하면서 밤새 놀거든요. 춤도 추고, 스피치도 하고 말이죠. 홀 전체를 빌려서 파티를 하는 것이죠. 그런 것을 한국에서는 못했으니까 좀 아쉽습니다. 그래서 호주에 가서도 결혼식을 다시 한 번 할 생각입니다. 저의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말이죠. 또한 한국 결혼식과 호주 결혼식 문화의 차이는 부조금에 대한 것인데요. 한국에서는 지인들이 돈을 봉투에 넣어서 주지만 호주에서는 그 대신 직접 마련한 선물을 줍니다. 토스트기와 같은 가전제품 등이 주를 이루죠. 예를 들어 부부가 리스트를 만들면 친구들이 보고 알아서 사주는 방식인데요. 뭐가 필요한지 직접 물어보고 사주기도 합니다. 보통 한 커플이나 한 사람이 하나씩 사줍니다. 괜찮은 아이디어죠. 결혼하고 새 집에 들어갔는데 아무 가구나 전자제품이 없으면 별로니까요. 한국의 돈을 주는 문화는 실용적이지만 제 생각에는 너무 비인간적으로 보여요. 아무 느낌 없이 현금만 주니까 별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 것 같아요." (Christopher Jones)
상부상조의 공동체 정신으로 전해져온 한국 결혼식의 부조문화가 외국인의 관점에서는 비인간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점은 새로운 사실이다. 하지만 크리스 부부의 사례를 볼 수 있듯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과 사고방식을 가진다면 문화의 차이는 분명히 극복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4 "저는 그래도 한국이 좋습니다."
2010년 5월에 결혼에 골인한 이후, 크리스씨는 장인, 장모님과 함께 서울에 거주하고 있고 2011년 초 대학졸업을 앞두고 있다. 장인, 장모님과의 갈등요소는 없느냐는 질문에 크리스씨는 너무나 잘해주셔서 감사할 뿐이라고 답했다. 자신이 대학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크리스씨는 장인, 장모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소영이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친근한 호칭을 사용한다. 소영씨 부모님 역시 크리스씨를 '크리스'라고 살갑게 대해주신다. 크리스씨는 매일 한 두 시간 정도는 아버님과 맥주 한 잔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다고 말했다.
"저는 그냥 서울에서 사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물가도 호주보다 싸고, 대중교통도 너무 잘 돼 있고, 인터넷도 빠르고, 시드니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어요. 거의 언제 어디에서든 친구를 만나서 한 잔하거나 식사하고 재미있게 놀 수도 있죠. 그리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시드니보다 서울이 훨씬 안전해요. 한국에서 사는 것에 대한 장점이 단점보다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Christopher Jones)
한국드라마와, 영화, 음악을 좋아하고 유난히 배추김치를 좋아한다는 크리스씨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재치 있게 한마디 했다. “한국이 외국인들에게 김치나 불고기 같은 음식을 홍보하는 것은 좋은데, 솔직히 말하면 김치, 불고기는 그냥 반찬이잖아요. 이웃나라 일본과 같은 경우는 스시라는 음식을 전파하여 외국에서는 이미 고급식사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비빔밥이라는 한국음식은 한국인들의 조화로운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요. 이처럼 좀 더 획기적인 아이템으로 국가 이미지를 만든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Christopher Jones)
2011년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사회로 진출하게 될 크리스씨가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기를 응원해본다.